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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야기

해양학의 역사에 대해서

by 해달정보 2026. 10. 4.

해양학은 바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과 변화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단순히 바닷물이나 해양 생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 여러 학문을 바탕으로 해양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한다. 선사시대 시절, 인류가 바다 그리고 파도, 해류에 대해서 알게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기원전 384-322년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트라본이 조수를 기록했다. 바다의 초기탐험의 목적은 지도 제작을 위한 것이었고, 그 내용 또한 어부들이 그물에서 기르던 동물과 해양의 표면에 대한 것들로 제한되기도 했다.

최초로 체계적으로 지속되었고, 대규모인 과학적 프로젝트는 포르투갈의 해류와 바람에 대한 대서양 항해 캠페인이다. 포르투갈의 수학자 페드루 누네스(1502-1578)는 1527년부터 왕실에 임명될 때까지 조종사 그리고 선원에 대한 교육에 관여했다. 그는 지도에 표시된 두 지점에서의 최단경로인 '사항곡선'에 대해 연구했고, 'Treatise of the Sphere'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그의 기하학적 및 천문학적인 탐색 방법에 대한 논문도 포함되어있다.

포르투갈의 항해 기술이 발전한 데에는 실제 항해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도 큰 영향을 미쳤다. 카나리아 제도 남쪽에서 출발한 배가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오려고 하면 바람과 해류의 방향이 달라 쉽게 돌아오기 어려웠다. 대서양에는 여러 해류와 무역풍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포르투갈인들은 단순히 직선으로 항해하는 대신 계절에 따른 바람과 해류의 변화를 이용하여 보다 효율적인 항로를 찾았다. 이러한 항해 방식은 'volta do mar' 또는 'volta do largo'라고 불렸다.

아소르스 제도의 발견과 활용 역시 이러한 항해 기술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서쪽 해안에서 유럽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바람과 해류를 이용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았으며, 아소르스 제도가 이러한 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포르투갈은 대서양의 계절적 변화에 따라 해류와 바람의 세기가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하여 여러 항로를 활용했다. 당시 이러한 항해 정보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였기 때문에 지도와 항로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기도 했다.

이러한 탐험은 아프리카와 인도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로를 개척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아프리카 남단을 탐험하면서 희망봉을 발견했고, 이후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지나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였다. 이는 포르투갈이 인도양으로 진출하고 아시아와의 해상 교역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서 새로운 영토를 둘러싼 경쟁이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정해진 경계선을 기준으로 신대륙에서 두 국가가 차지할 영역을 구분하였다. 이러한 국제적인 경쟁과 해상 탐험의 확대는 유럽 국가들이 바다와 항로에 관한 정보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었다.

현대 해양학에 대해서는 19세기부터 시작한다.
사실 인간은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바다의 얕은 영역까지만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바다의 깊이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세기 중반부터 영국 왕립 해군의 지구 해안선을 도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해양에 대한 관심을 올리는 데 꽤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대적인 해양 탐사의 중요한 전환점은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챌린저 탐사였다. 1871년 영국 정부는 영국 왕립 학회의 권고에 따라 세계의 바다를 대상으로 과학적인 조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탐사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에서 자연사를 연구하던 찰스 와이빌 톰슨과 그의 제자인 존 머레이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탐사선으로 사용된 HMS 챌린저호는 톰슨의 감독 아래 약 70,000해리를 항해하면서 세계 여러 해역을 조사하였다.

챌린저 탐사는 단순히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수온과 해류를 측정하고 해저 퇴적물을 채취하며 심층수와 해양생물을 조사하는 등 다양한 과학적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약 4,717종에 이르는 해양생물이 발견되었으며, 이를 통해 해양생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발전하고 해양생물학이라는 분야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챌린저 탐사에서 얻어진 수온, 해류, 퇴적물, 기상 등의 자료는 이후 현대 해양학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었다.

챌린저 탐사 이후에는 다른 국가에서도 심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877년 미국의 박물학자 아가시가 블레이크호를 이용해 여러 해역에서 심해를 조사하였으며, 이후 알바트로스호를 활용한 해양조사도 진행하였다. 이러한 탐사 활동을 통해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양성되면서 해양생물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해양 연구 방법 자체를 변화시켰다. 1914년에는 바다 바닥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음파를 이용해 해저의 수심을 측정하는 음향 측심 방법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은 1925년부터 1927년까지 메테오 탐사를 실시하면서 음향측심기를 이용해 약 70,000곳의 수심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저 수심도를 작성하였다. 이러한 기술은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바다를 조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1957년에는 미국의 핵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북극을 탐사하면서 잠수함을 이용한 극지방 해양 탐사도 이루어졌다. 이처럼 해양 연구는 선박을 이용한 표면 탐사에서 점차 잠수함과 음향 장비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20세기 후반에는 인공위성이 해양학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1978년 미국은 해양 관측을 목적으로 한 인공위성 Seasat을 발사하였고, 이를 통해 수온과 해안선 등 다양한 해양 관련 자료를 우주에서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해양을 직접 조사하는 방식에 더해 위성에서 넓은 범위의 해양 환경을 관측하는 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1990년에는 세계 해양의 순환을 장기간 연구하기 위한 WOCE(World Ocean Circulation Experiment)가 10년 규모의 연구계획으로 추진되었다. 미국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참여하여 전 세계적인 해양 순환을 조사하였다. 이러한 국제적인 공동 연구는 개별 국가의 연구를 넘어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해양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였다.

오늘날 해양학의 연구 대상은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해양생태계 변화 등 지구 환경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해양의 역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해양은 지구의 기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해양의 변화를 이해하면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해양에 존재하는 다양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 역시 현대 해양학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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