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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야기

니모가 사는 곳, 말미잘

by 해달정보 2026. 10. 4.

바다 밑바닥이나 암초 표면에 부착하여 살아가는 말미잘은 자포동물문 산호충강 해변말미잘목(Actiniaria)에 속하는 포식성 무척추동물의 총칭이다. 겉모습은 바닷속에 피어난 화려한 꽃이나 식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나가는 수중 생물을 포획하여 소화시키는 포식성 동물이다. 산호충강에 속하는 다른 산호류 친척들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여러 개체가 집단을 이루어 군체를 형성하지 않고 개별적인 단독 생활을 영위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반적인 해파리류가 생애 주기에서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메두사 단계를 거치는 것과 달리, 말미잘은 평생 동안 해저면이나 고체 표면에 정착하여 지내는 폴립 형태로 생애를 보낸다.

말미잘의 신체는 부드러운 근육질 조직으로 구성된 원통 형태를 띤다. 몸통의 한가운데에는 입이 위치해 있으며, 입 둘레에는 속이 비어 있는 유연한 촉수가 다수 배치되어 있다. 몸길이는 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5cm에서 5cm 사이이며 폭과 전체적인 체구는 서식 환경과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체색 역시 흰색, 녹색, 푸른색, 주황색, 붉은색 등 천차만별의 화려한 색상을 자랑한다.

내부 소화 체계는 입과 항문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은 불완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몸 중앙의 위수강이 위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며, 하나의 구멍이 입과 항문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이 때문에 섭취한 먹이의 노폐물과 소화되지 않은 부산물은 먹이가 들어온 입을 통해 다시 외부로 배출된다. 입의 형태는 대체로 좁고 기다란 균열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그 가장자리나 양끝에는 섬모가 빽빽하게 깔린 '관구'라는 홈이 형성되어 있다. 이 섬모의 파동 운동은 미세한 미생물과 먹이 입자를 안쪽으로 끌어들이고 위수강 내부의 수분을 지속적으로 순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입은 납작한 형태의 인두로 연결된다. 먹이가 표피나 촉수에 닿으면 몸이 입 방향으로 접히면서 먹이를 삼키는 행동이 일어나는데, 이때 인두는 위수강이 완전히 열리기 전 몸 전체 길의 3분의 1 수준까지 확장될 수 있다. 위수강 내부는 체벽에서 안쪽으로 발달한 중간층 칸막이에 의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며 중심 내강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룬다. 이 조직의 장간막에는 소화 효소를 분비하는 특화된 필라멘트가 분포하며, 특정 종에서는 독성 세포인 네마토시스로 무장된 실 모양의 '아콘티아' 필라멘트가 위수강 내에 자유롭게 늘어져 있다. 말미잘은 위급 시 이 아콘티아를 체벽에 위치한 작은 구멍인 신클라이드를 통해 몸 밖으로 분출하여 외적을 퇴치하는 방어 기동을 펼친다.

말미잘은 부유하는 플랑크톤부터 시작해 자신의 몸집보다 큰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을 포식하는 잡식성 생물이다. 먹이를 포착할 때는 촉수에 밀집된 수많은 자포를 사용한다. 자포가 자극을 받아 발사되면 테트라민(tetramine)이라는 독성 물질이 방출되어 먹잇감을 마비시킨다. 인체에 치명적인 수준의 오염이나 독성을 지닌 종은 흔하지 않지만, 맨손으로 만질 경우 피부 자극이나 통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서식 환경은 극지방의 차가운 바다부터 열대의 따뜻한 해역, 연안의 얕은 여울부터 미지의 깊은 심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바다 전체에 널리 퍼져 있다. 대부분은 바위나 조개껍데기, 물에 잠긴 목재 표면에 부착하여 살아가며, 바위 틈새나 해조류 아래의 그늘진 장소에 숨어 지낸다. 일부 종은 모래나 진흙 속으로 몸을 파묻고 살거나, 기저부를 관 형태로 변형시켜 수중을 떠다니는 부유 생활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말미잘은 족반(足盤)이라 불리는 바닥 부위를 이용해 단단한 바닥에 몸을 고정하고 한 장소에서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정착 생활을 유지한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매우 천천히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복족류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어서 이동하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느려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우며 주로 시간 경과 촬영을 통해 관찰된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위험을 피해야 할 때는 족반을 바위에서 떼어낸 후 촉수를 바닥에 부착해 당기며 걸어가거나, 촉수를 노처럼 빠르게 저어 수중을 헤엄쳐 도망치기도 한다. 또한 체벽 내부에는 세로, 가로, 대각선 방향으로 근육판이 잘 발달해 있어 몸을 길게 늘리거나 비틀 수 있으며, 위급 상황 시에는 구강 괄약근을 닫고 내부의 물을 입으로 배출하면서 몸을 급격하게 수축시킨다.

생식과 수명 주기 측면에서 말미잘은 매우 다채로운 양상을 보인다. 대다수의 종은 암수딴몸으로 유성생식을 진행하며, 바닷속에 정자와 난자를 방출하여 체외수정을 일으킨다. 수컷이 수중으로 정자를 방출하면 그 자극을 받은 암컷이 난자를 배출하고, 수중 또는 암컷의 위강 내부에서 수정이 완료된다. 수정된 알은 유영 능력을 갖춘 '플라눌라' 유생으로 발달하여 한동안 수중을 떠다니다가 해저면의 생물막이나 녹조류 표면에 끌려 정착한 뒤 성체 폴립으로 변태한다. 경우에 따라 알을 체내에서 부화시켜 배출하는 난태생 종도 있으며, Metridium dianthus 같은 종은 체벽에 난 구멍을 통해 생식 세포를 체외로 밀어내기도 한다.

일부 종은 자웅동체로 존재하며 생애 주기 도중 성별을 전환하는 특성을 갖는다. 예컨대 Epiactis prolifera는 초기에는 암컷으로 시작했다가 추후 자웅동체로 변하여, 무수정 단성생식으로 동일한 암컷 자손을 배출하거나 자가수정을 통해 번식한다. 이 유충은 어미의 입에서 나와 기둥을 따라 굴러 떨어진 뒤 족반 근처의 접혀진 공간에서 약 3개월간 보호받으며 성장한 후 독립적인 삶을 시작한다.

유성생식 외에도 강력한 조직 재생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무성생식을 수행한다. 몸체가 세로나 가로로 분열하는 이진핵분열, 몸 일부분에서 봉오리가 돋아나는 출아법, 그리고 이동 시 족반 기저부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 새로운 클론 개체로 재생되는 페달 열상 방식이 대표적이다. Anthopleura 속의 일부 종은 세로 분열을 거쳐 동일한 색상과 무늬를 지닌 개체군을 형성하며, Aptasia diaphana는 환경에 따라 남성 및 여성 개체를 모두 만들어 내는 성적 가소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말미잘은 전반적으로 성장과 번식이 느리게 진행되나 수명이 대단히 길어, 웅장한말미잘(Heteractis magnifica)의 경우 사육 상태에서 80년 이상 생존한 기록이 존재한다.

말미잘의 천적으로는 밤고둥, 불가사리, 대구, 넙치, 뱀장어 등이 있으며, 말미잘은 이들의 습격에 맞서 족반을 분리해 헤엄쳐 도망치거나 방어 물질을 분출한다. 반면 말미잘의 독성에 면역을 가진 다양한 생물들과 긴밀한 공생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도 한다. 흰동가리는 말미잘 촉수를 안식처로 삼아 천적을 피하고, 소라게는 집 껍데기 위에 말미잘을 올려놓아 방어 무기로 활용하며, 게 종류가 집게발로 작은 말미잘을 들고 지니며 적을 위협하기도 한다. 대형 열대 말미잘의 위강을 물고기가 자유롭게 드나들거나 촉수 주변에 벼룩류가 정착하여 편리공생을 이루는 등 바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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