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深海) 또는 해저(海底)는 지구 수권에서 햇빛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깊은 바다 영역을 일컫는다. 이 영역은 기조적 측정 수단으로는 파악하기 힘들 만큼 수압이 극심하여 레이더나 음향 탐지기 등 특수 장비를 동원해야만 정확한 지형 측량이 가능하다. 심해가 지구 해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해양 표면적의 약 9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 차 있는 바닷물의 부피는 전체 해수의 95%에 달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곳은 일본과 파푸아뉴기니 사이에 위치한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Challenger Deep)으로, 그 수심은 측정 방식에 따라 10,984m에서 비공식적으로 11,034m에 이른다. 이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높이에 약 2km를 더 올려놓아야 도달할 수 있는 엄청난 깊이다.
1. 인간의 탐사 한계와 생태학적 심해의 기준
바다에서는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수압이 약 1기압씩 상승한다. 이러한 물의 압력 때문에 사람이 스쿠버 다이빙 장비만으로 잠수하는 깊이는 열대 바다에서도 보통 10m 안팎이며, 일반 수영장의 깊이는 2m, 다이빙 전용 풀장도 10m에서 20m 정도에 불과하다. 전문 다이버라 할지라도 50m를 넘어서는 잠수는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며, 100m 이상의 수심에 도달하는 것은 세계적인 기록으로 취급된다. 민간 잠수정 역시 수십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빛이 차단되어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므로 더 깊은 곳으로 진입하기 어렵다. 인류가 우주 공간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현시대에도 정작 지구 표면의 해저 영역은 전체의 1% 미만밖에 탐사하지 못한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한편 생태학 학술 체계에서는 수심 200m를 기점으로 그 이하의 해역을 심해로 정의한다. 이 생태학적 기준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적인 식탁에서 자주 접하는 대구, 갈치, 명태, 벌레문치, 뚝지 등의 어류는 물론, 대게나 홍게 같은 절지동물 역시 심해 환경에 서식하는 심해 생물로 분류된다. 아울러 수심 1,000m 이내의 수압을 견디도록 제작된 대기압 잠수복 역시 이러한 기준에 따라 심해 잠수복이라 불린다.
2. 심해의 환경 구분과 물리·화학적 조건
심해 환경은 수심 및 생태적 특성에 따라 점심해수층, 심해원양성, 초심해대로 구분된다. 심해의 물리적 조건 중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빛의 부재이다. 중층원양대 상부를 제외하면 햇빛이 전혀 침투하지 못하므로 식물의 광합성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육상 생태계와 달리 심해 생태계는 자체적인 식물 생산자에 의존할 수 없으며, 표층 유광층에서 떨어지는 유기물에 에너지를 의존한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미세 조류 입자, 생물 사체, 폐기물 등으로 구성된 유기물 입자 집합체인 이른바 '해마(Marine snow)'가 주된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열수분출공 주변 지역은 이와 별개로 화학 합성을 통한 독자적인 에너지 공급 체계를 형성한다.
심해의 염분 농도는 지중해나 홍해 같은 특수 해역을 제외하면 위치에 상관없이 비교적 균일한 수치를 유지하여 생태학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수온은 심해 생태계의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바다에서 가장 급격한 수온 변화가 일어나는 구간은 표층수와 심층수 사이의 전이 영역인 수온약층(Thermocline)이다. 수온약층의 두께는 수백 미터에서 거의 1,000m에 달하며, 수심 200m에서 1,000m 구간에 걸쳐 깊이가 깊어질수록 온도가 급격히 하강한다. 특히 표층 수온이 20°C 이상인 열대 지방에서 수온약층의 경계가 가장 뚜렷하게 형성된다.
수온약층 아래의 수심 3,000m에서 4,000m 이하 해역은 온도가 0°C에서 3°C 사이로 극히 차갑고 동질적인 수괴를 이룬다. 이처럼 차가운 심층수는 극지방에서 발생하는 열염순환(Thermohaline circulation)을 통해 공급된다. 한편 지각 활동으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 열수분출공은 300°C가 넘는 고온의 열수를 배출하지만, 광활한 심해의 수량 때문에 분출공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주변 수온은 2°C 이하의 냉각 상태를 유지한다.
3. 심해 생물 탐사의 역사와 생태계 인식의 전환
과거 학계에서는 빛과 식물이 없고 수압이 극심한 심해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여겼다. 19세기 영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포브스(Edward Forbes)는 18개월간의 해양 조사를 바탕으로 심해에는 용존 산소가 부족하여 생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아조익 이론(Azoic theory)'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가 조사한 에게해 해역이 생물 개체 수가 유달리 적은 곳이었던 데다 당시의 채집 장비가 부적절했던 데서 비롯된 역사적 오류였다.
이후 현대적인 심해 잠수정을 활용한 정밀 탐사가 본격화되면서, 표층에서 가라앉는 영양분과 극지방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용존 산소를 바탕으로 심해에 다채롭고 독자적인 생태계가 번성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심해 생물의 종 다양성은 매우 뛰어나서 심해 잠수정을 이용해 탐사를 진행할 때마다 새로운 종이 무더기로 발견되곤 한다. 이때 생태계가 번성한다는 의미는 특정 단일 종의 개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이 아니라,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분화가 가속화되어 종의 가짓수가 대단히 풍부해졌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환경 변화가 거의 없는 안정적인 수중 환경과 열수분출공이라는 독자적 에너지원 덕분에, 심해는 지상과 표층의 대멸종 사건을 피해 살아남은 수많은 '살아있는 화석' 생물들의 안전한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4. 심해 생물들의 독특한 적응 전략
햇빛이 도달하지 않는 암흑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심해 동물들은 매우 독특한 신체적 특성을 발전시켰다.
첫째는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발광 능력의 발달이다. 발광기는 종 간의 인지나 동종 간의 신호 전달, 포식 회피를 위해 사용된다. 대부분의 심해어는 아래쪽 포식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배 부위에 발광기가 집중되어 있으며, 일부 발광 오징어류는 등쪽에 빛을 감지하는 특정한 '창' 구조를 지니기도 한다. 대표적인 발광 생물로는 발광멸, 슬로아니아매퉁이, 그리고 다양한 심해 새우류가 존재한다.
둘째는 신체의 대형화 현상이다. 수압을 견디기 위해 대사율을 높이고 저온과 먹이 부족 환경에서 성장이 느려진 대신 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거대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셋째는 감각 기관의 특수화이다. 희미한 빛이나 동물의 반응을 감지하기 위해 시력이 독특하게 발달한 종들이 존재한다. 다만 기본적인 먹이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일반적인 심해어들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몸집을 작게 유지한 채 적은 양의 영양분으로 생존하는 적응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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